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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윤탁 한글영비

서울 이윤탁 한글영비 : 보물제1524호
위치정보 : 서울 노원구 하계동 산 12-2의 신설된 도로변

조선중종때 문인 이문건이 선친 이윤탁과 어머니 고령 신씨를 합장한 묘 앞에 지극한 효심으로 후세에 비석과 묘를 해칠 것을 염려하여 세운 비로 하계동 산12번지에 있다. 최초로 한글이 새겨진 가장 오래된 비석으로 국내에는 하나뿐이다.훈민정음 반포시의 판본체, 한글고체, 국문전서의 글씨 형태를 보여주고 있어 국어학의 학술자료로써 매우 귀중한 국가유산이다.

비문내용: 이 비석은 신령한 비석이다. 이 비석을 깨뜨리거나 해치는 사람은 재화를 입을 것이다. 이것은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다.

부산진순절도(육군박물관)

부산진순절도(육군박물관) : 보물 제391호
위치정보 : 서울 노원구 공릉동사서함 77-1호 육군박물관

조선 선조 25년(1592) 4월 13일과 14일 이틀 동안 부산진에서 벌어진 왜군과의 전투장면을 그린 것으로, 크기는 가로 96㎝, 세로 145㎝이다.

비단바탕에 그려진 이 그림은 숙종 35년(1709)에 처음 그려진 것을 화가 변박이 영조 36년(1760)에 다시 그린 것인데 처음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높은 곳에서 전투장면을 내려다 보듯 묘사하였는데, 그림 오른쪽 중간에 부산진 성곽이 배치되어 있고 그 주변을 왜병 및 왜선이 빈틈없이 에워싼 모습은 아군과 적군의 심한 전력의 격차를 보여준다.

그림의 작품성은 전반적으로 높게 평가되지는 않으나, 나라를 수호하는 민족정기를 보여주는 역사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동래부순절도(육군박물관)

동래부순절도(육군박물관) : 보물 제392호
위치정보 : 서울 노원구 공릉동사서함 77-1호 육군박물관

선조 25년(1592) 4월 15일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에서 왜군의 침략에 대응하다 순절한 부사 송상현과 군민들의 항전 내용을 묘사한 그림이다.비단 바탕에 그린 이 그림은 숙종 35년(1709) 처음 그려진 것을 영조 36년(1760) 화가 변박이 보고 다시 그린 그림으로 크기는 가로 96㎝, 세로 145㎝이다.

위에서 내려다 보는 듯한 기법을 사용하여 치열했던 교전의 장면을 화폭에 나타내었다.중심에 동래성이 둥글게 자리잡고 있고 남쪽 성루를 중심으로 동래 병사들이 수비하고 있으며 이들을 공격하기 위해 왜병들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다. 성곽 아래쪽으로는 왜군과 죽음의 결전을 벌이는 장면이 있고, 성곽 안쪽 중심에는 붉은 조복을 입고 북쪽을 향해 앉아있는 송상현의 순절장면이 그려져 있으며 북문 밖으로는 성을 버리고 달아나는 경상좌변사 이각의 무리들이 대조적으로 그려져 있다.

화면 위쪽의 산은 윤곽선을 선으로 나타내고 점을 찍어 표현하였는데 다소 경직된 모습이다.

작품의 격은 그리 높지 못하고 구도나 형태, 필치 등에서 경직된 면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커다란 국난을 맞이하여 끝까지 항전한 민족성을 표현하여 민족적 교훈을 담고 있다.

불랑기자포(육군박물관)

불랑기자포(육군박물관) : 보물 제861호
위치정보 : 서울 노원구 공릉동사서함 77-1호 육군박물관

불랑기자포는 불씨를 손으로 점화·발사시키는 화기로는 조선시대 유일한 후장식 화포이다.

불랑기는 15세기 포루투칼을 포함한 서구제국에서 만들어져 1517년경 중국 광동지역에 서역상선이 들어오면서 전해졌다.

우리나라에는 조선 선조 25년(1592)에 명나라 군대가 가지고 들어왔다고 알려졌으나 이 유물이 발견되어 명종 때 이미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불랑기자포는 발사틀 구실을 하는 모포와 실탄을 장전하여 모포에 삽입·발사하는 자포로 나누어진다.

전체적으로 몸통이 길고 포구쪽이 가는 형태이며, 몸통 윗부분에는 가늠쇠가 있고 포구 위쪽에 가늠자가 달려있다.

원래 바퀴는 없었으나 고종 5년(1868) 신헌에 의해 4바퀴가 달린 마반차를 개발·사용하였다.임진왜란 때 평양성 탈환에 널리 활용되었으며 신미양요(1871) 때는 미국의 군함에 맞서기 위해 초지진과 황성보진에 배치되기도 하였다.

오랜 동안 지하에 묻혀 있었지만 완전한 형태로 발견되어, 우리나라 화포사 연구는 물론 국방과학기술국가유산로써 중요하게 평가된다.

조흡 고신왕지 (육군박물관)

조흡 고신왕지 (육군박물관) : 보물 제1226호
위치정보 : 서울 노원구 공릉동사서함 77-1호 육군박물관

문서는 태종 6년(1406) 윤 7월 13일 국왕이 무신인 조흡(?∼1429)을 가선대부 좌군도총제부동지총제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사령왕지이다.

조흡은 고려 후기 문하시중을 지내고 창성부원군에 봉해진 조민수의 손자로, 정종 2년(1400) 방간의 난에서 공로를 세워 태종 1년(1401)에 공전을 사급받는 한편 무관의 요직에 발탁되어 그 벼슬이 재상의 반열에 올랐다.

이 문서는 총 7행에 걸쳐 초서체로 세로로 썼으며, 연월 위에는 ‘조선국왕지인’이란 새보(임금의 도장)가 찍혀있다.왕지는 세종 말기부터 교지로 바뀌고 여기에 찍히는 직인도 ‘조선국왕지인에서 ‘시명지보’로 바뀌었다.이 문서는 조선 전기의 문서양식, 새보사용의 변천과정 연구 및 인사행정제도 연구의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세총통(육군박물관)

세총통(육군박물관) : 보물 제854호
위치정보 : 서울 노원구 공릉동사서함 77-1호 육군박물관

세총통은 세종 때 만든 휴대용 화기로 길이 13.8㎝, 안지름 0.9㎝, 바깥지름 1.4㎝이다.모양은 화약을 넣는 약실과 화기의 몸체인 총신 사이에 2개의 마디를 두고 약실 부분은 약간 도톰하게 만들었다.

총통 중에서 가장 작은 종류의 화기로, 세종 14년(1432)에 만들었으나 사정거리가 겨우 200보 밖에 되지 않아서 존폐론이 대두되기도 하였다.그 뒤 1437년 평안도에 많이 보내졌는데, 휴대와 발사가 모두 간편하여 어린이와 부녀자도 쉽게 다룰 수 있었으므로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또한 적과 싸울 때는 말 위에서 많이 소지하여 연속발사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아무런 흠집없이 그대로 보존되었으며, 능숙한 공정기법으로 주조된 우리나라 유일의 최소형 총통에 속하는 국가유산이다.

대완구(육군박물관)

대완구(육군박물관) : 보물 제857호
위치정보 : 서울 노원구 공릉동사서함 77-1호 육군박물관

완구는 일명 ‘댕구’라고도 부르며 유통식화기의 한 종류로 조선 태종 때 최해산이 만들었다고 한다.

완구는 크게 완, 격목통, 약통의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완은 발사물 즉 큰 돌이나 쇠공을 올려 놓는 곳으로 그릇 모양을 하고 있다.

약통은 화약을 넣는 곳으로 점화선을 끼우는 점화구멍을 2개 가지고 있다.약통과 완 중간에는 격목통이 있는데 이 곳에는 화약이 폭발할 때 생기는 폭발력을 완에 전달하기 위한 나무로 만든 격목이 있다.

전체 길이 64.4㎝, 포구 지름 26.3㎝인 이 완구는 조선 헌종 11년(1845)에 유희준과 김형업에 의해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모양이 매우 소담스럽고 장중해 보이며 겉에는 대나무 모양으로 5마디를 나누었다.

약통의 손잡이 부분에는 좌우에 2개의 작은 구멍을 뚫었는데 왼쪽의 것은 발사과정에서 유사시를 대비하기 위해 예비로 설치한 것이다.

포의 끝 부분은 지름 28.8㎝의 원형으로 포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적혀 있다.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대완구로 제조기법이 우수하고 보관이 잘 되어 국방과학국가유산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 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