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소개
하계1동
동현황
주요 공공기관(경찰서, 소방서 등)
| 연번 | 기관명 | 주소 | 전화번호 |
|---|---|---|---|
| 하계1동주민센터 | 노원로 261 | 02-2116-2570 | |
| 노원경찰서 | 노원로 283 | 02-2092-0225 | |
| 하계1동치안센터 | 공릉로 290 | 02-2092-0805 | |
| 노원소방서 | 한글비석로1길 8 | 02-6981-6873 | |
| 하계119안전센터 | 한글비석로1길 8 | 02-6981-6940 | |
| 노원자동차검사소 | 공릉로62길 41 | 02-972-4121 | |
| 하계시영우편취급국 | 공릉로58길 41 | 02-971-6827 |
도서관
| 연번 | 시설구분 | 도서관명 | 주소 | 전화번호 |
|---|---|---|---|---|
| 공공도서관 | 하계어린이도서관 | 공릉로62길 18 | 02-979-7644 | |
| 작은도서관 | 가재울지혜마루 작은도서관 |
한글비석로 97 | 070-4226-5064 |
학교
| 연번 | 학교명 | 주소 | 전화번호 |
|---|---|---|---|
| 연촌초등학교 | 공릉로58길 36 | 02-972-1676 | |
| 하계중학교 | 노원로 261-8 | 02-3399-0200 | |
| 불암중학교 | 한글비석로5길 45 | 02-975-4047 | |
| 혜성여자고등학교 | 노원로16길 2 | 02-972-4040 | |
| 대진고등학교 | 공릉로62가길 47 | 02-976-0067 | |
| 경기기계공업고등학교 | 공릉로 264 | 02-2289-1600 | |
| 동천학교 | 노원로18길 41 | 02-974-9576 | |
| 정민학교 | 공릉로58길 24 | 02-978-8405 |
복지시설
| 연번 | 시설구분 | 시설명 | 주소 | 전화번호 |
|---|---|---|---|---|
| 아동돌봄시설 | 구립하계지역아동센터 | 노원로16길 15, 3층 | 02-973-1655 | |
| 아동돌봄시설 | 하계어울림아이휴센터 | 공릉로58가길 13, 3층 | 02-979-7714~6 | |
| 공동육아방 | 하계1동 도담도담나눔터 | 공릉로62길 18, 1층 | 02-949-1955 | |
| 어르신복지시설 | 시립노원노인종합복지관 | 노원로16길 15 | 02-948-8540 | |
| 어르신복지시설 | 하계어울림 어르신스포츠센터 | 공릉로62길 18 | - |
※ 경로당, 요양기관 제외
커뮤니티공간
| 연번 | 시설명 | 주소 | 전화번호 |
|---|---|---|---|
| 하계어울림센터 | 공릉로62길 18 | 02-2116-0678 | |
| 하계어울마루 | 공릉로62길 18, 1층 | 02-976-4693 | |
| 가재울지혜마루 | 한글비석로 97 | 070-4226-5064 |
민방위대피소
| 연번 | 시설명 | 주소 | 전화번호 |
|---|---|---|---|
| 경기기계공업고등학교 | 공릉로 264 | 02-2289-1600 | |
| 대진고등학교 | 공릉로62가길 47 | 02-976-0067 | |
| 세이브존 노원점 | 한글비석로 57 | 02-985-9000 | |
| 노원을지대학교병원 | 한글비석로 58 | 02-970-8404 | |
| 하계1동주민센터 | 노원로 261 | 02-2116-2566 |
우리동 명소
충숙공 이상길 묘역 충숙이공신도비(忠肅李公神道碑)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 사진 | 위치 및 소개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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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하계동 한글비석로 144 | |
| 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묘앞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상길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이상길 선생은 선조 18년(1585)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인조 때에는 공조판서를 지내기도 하였으며,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조정의 명을 받아 영위사가 되어 80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강화도에 들어갔다. 이듬해 청나라 군대가 강화도로 몰려오자 아들에게 뒷일을 부탁한 뒤 스스로 목을 매어 생을 마쳤다. 이러한 그의 충절을 기려 ‘충숙공(忠肅公)’이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좌의정에 추증되었다.비는 사각의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모습으로, 조선 중기의 양식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비문은 성균관제주였던 송시열이 짓고, 글씨는 송준길이 썼다. |
충숙이공 영정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 사진 | 위치 및 소개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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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하계동 한글비석로 144 | |
| 조선 인조 때의 문신인 충숙공 이상길(1556∼1637) 선생의 초상화이다.이상길 선생은 30세에 문과에 급제한 후 대사간,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인조 15년(1637) 병자호란 때에 청나라 군대의 침략에 대항하여 강화도에서 종묘를 지키다 순절하였으며, 효종 8년(1657)에 충숙공에 봉해졌다.비단에 채색하여 그린 초상화는 실물과 같은 규모인 가로 93㎝, 세로 186.5㎝의 크기이다.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상으로, 사모를 쓰고 엷은 홍색의 단령을 입고 있으며, 두 손은 앞으로 모아 소매자락 안에 넣었다. 집무복의 양쪽 트임새로 살짝 내비치는 겉옷의 안자락을 표현하고, 양쪽 어깨의 경사진 각도를 달리 표현함으로써 앉음새를 매우 안정되게 나타냈다.조선 중기의 전형적인 작품으로, 조선시대 대부분의 초상화가 원작을 옮겨 그린 이모본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초상화로서 가장 오래된 실제본이라는 점이 특기할 만 하다. |
서울 이윤탁 한글영비 (서울 李允濯 한글靈碑) -보물
| 사진 | 위치 및 소개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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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하계동 12번지 | |
| 이 비석은 묵재(黙齋) 이문건(李文楗)이 부친인 이윤탁(李允濯)의 묘를 모친인 고령(高靈)신씨(申氏)의 묘와 합장하면서 1536년에 묘 앞에 세운 묘비이다. 이 묘비에는 앞면과 뒷면에 각각 묘주의 이름과 그 일대기가 새겨져 있고, 왼쪽과 오른쪽에도 한글과 한문으로 경계문이 새겨져 있다.이 비석의 특징적 가치는 비석 왼쪽 면에 쓰여진 한글 경고문인데, 우리나라 비문으로서는 한글로 쓰인 최초의 묘비문으로 알려져 있어 그 역사적 가치가 높으며 국어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이 ‘한글영비’는 국어생활사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첫째, 중종 31년(1536) 당시 한글이 얼마나 널리 알려져 있는가를 증명해주는 자료이다. 둘째, ‘한글영비’에 새겨진 한글의 서체는 훈민정음이 창제된 직후의 서체, 즉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체와 <용비어천가> 서체의 중간형의 성격을 지닌다. 셋째, 이 비석의 글은 비석의 이름인 ‘영비(靈碑)’를 제외하고는 국한 혼용이 아닌 순 국문으로 쓰여 있다. 본격적으로 한글로만 쓴 문헌은 18세기에나 등장하나 이 ‘한글영비’는 16세기에 이미 순국문으로만 쓰인 문장이라 할 수 있다. 넷째, ‘한글영비’는 언해문이 아닌 원 국문 문장이다. 15세기 이후 한문 원문을 번역한 언해문이 한글자료의 주종을 이루었으나 이 ‘한글영비’는 짧은 문장이긴 하나 처음부터 우리말로 쓰인 문장으로, 한글이 한문 번역도구가 아닌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직접 전달하는 도구로 변화하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다섯째, ‘한글영비’에 쓰인 국어 현상은 이 당시의 언어를 잘 반영하여 당시 국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