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간공 이명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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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신도비(李蓂神道碑) -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55호

이명신도비(李蓂神道碑) -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55호
위치 : 월계동 767번지 2호

이 신도비는 조선 명종때 좌의정을 지낸 청백리 이명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선조 7년(1574년)에 건립되었다. 이명(1496~1572)선생의 자는 요서로서 연간현감 이보간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중종20년 사마시에 합격, 1528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1544년 직제학으로 승진하여 동부승지·우부승지가 되었으며 1553년 이조참판이 되어 특진관으로 입시, 을사사화 때 화를 입은 사람의 신원을 주장하여 왕의 승낙을 얻고 그날로 형조판서에 올랐다. 이어서 호조, 공조의 판서를 역임하고 1564년 우의정이 되었다. 성품이 단정하며 직무에 충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올바른 주장은 절대 굽히지 않았다 한다. 일생을 청백리로 일관하다 생을 마쳤으며, 죽은 후 정간이라는 시호가 붙여졌다.

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모습이며, 비몸의 윗쪽 양변을 둥글게 다듬었다. 받침돌은 윗면에 연꽃무늬를 둘렀으며, 옆의 4면에는 안상(眼象)을 얕게 새겨 두었다.

선조 7년(1574)에 세운 비로, 대제학과 우의정을 지낸 김귀영이 비문을 짓고, 병조판서 신충겸이 글씨를 썼다.

이밖에도 묘역에는 공의 부, 조모 삼대의 분묘와 실전된 선조들의 설단이 있다.

최종수정일 : 2020-03-18 16:0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