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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시습
  •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선 전기의 학자입니다. 유교와 불교 정신을 아우르는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금오산실에서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 <금요신화>를 지었으며, 노원구의 수락산 중턱 장재울 마을에 수락정사를 짓고 10여 년간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 이명
  • 월계동에 있는 이명신도비(정간이공신도비)의 주인공입니다. 조선시대 문신으로 우의정, 좌의정을 지냈습니다. 청렴 강직하여 명종 때 청백리로 뽑혀 다른 사람들에게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되었습니다.
  • 이문건
  • 하계동에 있는 이윤탁 한글영비를 세운 이문건은 조선시대 문신으로 종종의 시호를 쓰고 인종대왕 시책문을 쓸 정도로 뛰어난 서예가였습니다. 그의 시문은 당대의 사림인 이황,조식 등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 윤두수
  • 중계동에 있는 학도암 바로 밑 납대울에 살았던 조선 중기의 문신입니다. 1558년 과거급제 후 계속 승진해 영의정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온화한 성품이면서도 큰일이 있을 때는 직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저서로는 <오음문고> <기자지> 등이 있습니다.
  • 이상길
  • 하계동에 살았던 문인으로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80세의 몸으로 묘시를 받들고 강화도로 갔습니다. 다음해 청군이 강화도로 몰려오자 아들을 불러 뒷일을 부탁한 뒤 스스로 목을 매 죽었는데 조정에서는 그의 충절을 기려 그를 좌의정으로 추증 하였습니다. 그의 묘소는 하계동에 있으며 저서는 '동천집'이 있습니다.
  • 박세당
  • 조선 후기 대표적인 학자로 노원의 수락산 서쪽마을 장재울에 살았으며, 수락산 석림사 옆에 그의 묘소가 있습니다. 1660년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예조좌량, 홍문관교리 등을 지냈으나 당쟁에 혐오를 느껴 관직을 사양했습니다. 저서로는 <서계선생집> <신주도덕경> <남화경주해책보> <색경>등이 있습니다.
  • 고언백
  • 조선시대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대규모로 왜군을 물리친 전과를 인정받아 양주목사가 되었습니다. 고언백의 가장 중요한 전투는 1593년 치러진 노원평 전투로서 임진전란사에 기록될 만큼 유명하고 치열했습니다. 또 태릉방어에도 공을 세워 경기도방어사로 승진하였습니다. 이후에도 한양 탈환전에서 명나라 군사의 길잡이 역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전공을 세워 왜군이 물러간 후 1604년 선무공신 2등으로 제흥군에 봉해졌습니다. 후에 선무공신으로 관작이 회복되었으며, 병조판서로 추증되었습니다.
  • 유세열
  • 경기도 여주에서 항일 의병활동을 했습니다. 일본군이 검거 활동을 강화하자 고향 여주를 떠나 양주군 노해면 상계리로 옮겨 살았습니다. 강직한 성품을 지녔고 학식이 높았으며 구한 말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의병활동과 독립운동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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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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