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 내려오는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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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슴과 결혼한 염씨(廉氏) 처녀의 눈물
  • 조선 중기때 중랑천이 범람해서 우이천까지 물이 흘러들어가는 큰 홍수로 인해 지금의 월계로 근방 마을은 모두 폐허가 되었다. 이에 대한 대책마련 회의에서 마을 촌주(村主) 한 사람이 지난밤 꿈에 신선(神仙)을 만났는데, 내일 정오에 중랑천 가에 푸른 사슴 한 마리가 내려와 목욕을 할 것 이니 제물을 준비해 두었다가 사슴에게 바치고, 마을에서 가징 예쁘고 정숙한 처녀 한 사람을 사슴에게 시집보내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라는 답을 해 주고는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때 염씨(廉氏) 집의 15세 난 딸을 사슴에게 시집보내기로 하였다. 이러한 결정이 있은 며칠 후 신선이 시킨대로 산 정상에 제물을 준비하고 염씨 처녀를 곱게 단장시키고 사슴을 기다렸다. 정말 사슴 한 마리가 산에서 내려와 중랑천에서 목욕을 한 후 처녀를 태우고 동네를 한바퀴 돌아 766번지 쯤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지금의 하천이 생긴 방향으로 사라졌다.
    마을 사람들은 사슴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자 멀리서 물줄기 두 개가 나뭇가지 모양으로 흐르기 시작하더니 중간쯤에서 합쳐져 한 줄기로 되면서 황토흙으로 뒤덮였던 마을 앞 전답이 기름진 검은 색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 신기한 일에 놀라워하자 그 중 한사람이 “이건 사슴과 결혼한 염씨 처녀의 눈물이니 냇물 이름을 녹천이라 하자”고 제의하여 마을 이름도 녹천이라 하였는데 이때부터 녹천(鹿村) 혹은 녹천(鹿川)이라 하여 혼용하여 썼으며 이날 이후부터 마을이 번성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 월계동 지역 헌화형(獻花形) 마을 이야기
  • 녹천의 남쪽 아래에 능골이라는 마을 있었는데 마을 여성들의 기(氣)가 세어서 음란한 부녀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곳 사람들은 사람을 사슴에게 시집보낸 해괴한 일을 한 녹천 사람들 때문이라고 하여 녹천마을과 왕래조차 하지 않고 등을 지고 살게 되었다.
    원래 능골에 이명(李蓂)의 무덤을 만들 때 지나가던 승려가 이곳은 헌화형이어서 “자손은 번성하지만 음란한 지형이니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땅을 밟아서 지기(地氣)를 다스려야하는 곳으로 될 땅”이라 하였다. 왜냐하면 헌화형은 양다리를 벌려서 중간구덩이를 연 것과 같은 자세인데 이는 여인의 다리를 벌린 형태이므로 음란하여 풍수지리설로 보아 주택지나 음택(陰宅,묘지)으로 별 환영을 받지 못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동네 재앙을 막을 수 있는 비법에 대해 물었는데 그 승려는 녹천 지역사람들과 혼인을 금하고 등을 지는 형태로 집을 짓고 마을의 동쪽에 절을 세우면 동네 화근이 사라진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마을이다.
  • 온숫골(온수동) 마을 『자우물』 이야기
  •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현대식 건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옛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지만 온숫골(온수동) 마을에 『자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원래 온숫골은 더운물이 솓아나온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옛날 이 마을 앞을 흐르던 도랑이 있었는데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았다고 하는 걸 보니 필경 깊은 연관이 있는 마을이다. 또 일제 때 일본 군인들이 기동 훈련을 하면서 지도를 펴놓고 온수동이 어디냐고 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것으로 보아 물이 좋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던 모양이다. 이곳에 있었다는 자우물 물은 식수는 물론 농수로도 썼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자아올려 먹었다고 하여 자우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샛말의 소금장수 이야기
  • 벽운마을과 갈울마을 사이에 있는 마을을 사잇말이라 하였는데 사잇말을 줄여 샛말이라고 했다. 이 마을 사는 사람들은 마포나루에서 소금을 사다가 조랑말에 싣고 함경도로 가서 그곳에서 많이나는 황태와 바꾸어 동대문시장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노원지역은 남쪽과 북쪽을 잇는 주요 교통로로서 이러한 물물교환이 이루어지는 통로역할을 했다고 한다. 한양을 중심으로 북쪽에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남쪽에서 올라가는 사람들은 한탄강 양쪽에 들어선 객주집에서 하룻밤 쉬었다가 길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니 이곳은 각처에서 온 사람들로 매우 붐볐을 것이다. 소금뿐만 아니라 새우젓 등 서해에서 나는 것과 동해에서 나는 황태 등을 사고 팔아 꽤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 마들평야 쇠제 이야기
  • 노원지역은 허허벌판으로 갈대만이 무성하게 자라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양과 근접해 있고 북쪽지역인 강원도와 함경도로 가는 첫 관문이기 때문에 남쪽과 북쪽을 이어주는 교통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교통로를 따라 요지에 역원을 설치하여 교통 숙박의 편의를 제공하였는데 노원 지역도 역원이 설치되면서부터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또 오래전부터 노원 지역을 “마들평야”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갈대만이 무성하던 벌판에 역원이 생기자 이에 필요한 역마를 놓아기르게 된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이렇듯 들판에서 말들을 기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굽에 씌울 징을 만드는 곳이 생겨나 그곳을 “쇠제”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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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7-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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